(누가복음 13:1~21)④[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1~21)④
유대교 지도자들을 위시한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11:37~54절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에게 임할 여섯 가지 화를 열거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경고를 하시는데 이 경고를 말씀하시게 된 직접적 동기는 그들의 완악한 질문에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 당국에 의해 신전에서 피살된 사건의 책임소재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갈릴리사람들은 평소 다른 지역의 주민보다 과격했으며, 유대의 독립을 쟁취하려다 반역 죄명으로 빌라도의 병사들에 의해 대량 학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이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문제로 정치성을 띤 문제였습니다.
만일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때 대적들은 예수님을 로마 당국에 넘길 구실을 찾게 되며, 죽은 사람들은 인과응보의 원리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불행과 저주를 죄의 탓으로 돌렸던 그들의 율법적 관념을 지지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의 이면에 간교함이 깃들어 있음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대로 따라가시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의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기를 거부하셨고 오로지 이 땅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업, 즉 복음 사역에만 관심을 쏟으셨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예수님은 미묘한 정치적 함정이 깔린 질문에 대해 직접 답변하시지 않고 회개에다 초점을 돌리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우회적인 답변은 대적들의 함정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율법적 사고방식을 공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10~17절, 안식일의 논쟁이 벌어집니다. 이 논쟁의 발단은 안식일에 시행된 예수님의 병을 치료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예수님과 회당장 사이에 벌어진 안식일 논쟁은 예수의 복음 사역과 대적들의 핍박이라는 복음서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한편, 본 논쟁의 공간적 배경은 회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이적 행사를 베푸신 것은 본서에 여러 번 언급되었으나, 본문의 경우가 마지막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의 핍박이 고조된 까닭에 예수님께서 앞으로 더는 회당을 가까이할 수 없었던 점을 뜻합니다.
18~21절,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외형적 확장을 가리킵니다. 복음의 시작은 매우 약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대부분이 어부들과 세리들 그리고 연약한 여인들이었으며, 또한, 배우지 못한 무식자들이 상당수였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은 복음의 역사를 끊어지게끔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하게 전파되도록 능히 역사하시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유럽과 대부분의 아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북미 전역 등이 이미 복음의 영향권 아래 있으며 지금도 전 세계의 복음화를 향해 수많은 선교사가 파송되고 있습니다.
누룩의 비유는 겨자씨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외면적 성장에 강조점을 두었지만,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면적 성장을 강조합니다. 죄인의 심령 가운데 드러나는 은혜의 사역은 처음에는 매우 미약하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최초의 누룩 덩어리와 같아서 인간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 편의 설교나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이나 혹은 한 장의 전도지나 신자로부터 받은 사소한 친절 행위가 한 영혼으로 생명의 길을 가도록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은혜의 사역 시작은 대단히 미약하나 누룩 덩어리가 점차 확산하는 것처럼 한번 은혜의 사역 대상이 된 사람은 성령의 강권적인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전 인격이 변화되는 놀라운 사건을 체험케 됩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교회의 외적 성장과 내적 성장이라는 측면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일진대 이상적인 교회란 양자의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길은 한 가지뿐입니다.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 앞에서 지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할 때 주께서는 더는 죄에 대하여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해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늘 우리의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의 고백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그 모든 질병과 사탄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한편 소심함이나 위선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고자 하는 물질과 시간 혹은 재능의 은사들이 아주 작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쥐어질 때는 하나님께서 이루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큰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보다 나아진 점은 그저 착하게만 살았다는 것밖에 없네요, 결국 손해가 컸다는 것만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기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내 생각의 판단 때문에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엷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작은 겨자씨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만 기쁨이 있음을 고백하길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