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7:1~11)②[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예레미야 27:1~11)②
여기서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의 실체로서의 ‘줄’과 ‘멍에’는 이제까지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와는 그 성격이 좀 다릅니다. 여기에서 비유는 유다의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의 확실성뿐만 아니라 그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에게 복종할 것까지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멍에의 줄을 매는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이전의 메시지를 보다 진전된 내용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1절은 도입부입니다. 2~4절은 하나님의 예레미야에 대한 상징적 명령입니다. 5~8절은 상징적 행위에 대한 해석, 9, 10절은 하나님의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계, 11절은 결론으로 바벨론에서의 보호 약속입니다.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임을 설명합니다. 바벨론의 멍에 아래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족속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칼, 기근, 염병 등으로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언급한 후에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도록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상반되게 바벨론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반란을 도모하는 민족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언약을 파기한 자들의 최후에 대해 경고하며, 더 나아가 남은 자의 구속을 계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원대한 구속 계획을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 도전한 것으로 간주하여 멸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나갑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이 열방을 정복하도록 역사하신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에서 평안하게 지내도록 보호하실 것임을 천명합니다. 당장은 괴롭고 힘든 포로 생활이겠지만 곧 익숙해져서 어느 정도의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예언은 바벨론이 앗수르의 혼합 정책과는 달리 각 나라의 종교를 허용하고 공동생활을 보장하는 유화 정책을 전개함으로써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포로 생활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더 나아가 포로 귀환을 통해 완전한 회복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시적으로는 부당한 명령을 내리시는 것 같지만 결국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판단이 말씀에 의지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는 단순히 개인의 경험이나 이성적 판단을 근거로 하여 살아가지 말고, 오직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 되는 말씀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역설은 단순한 논리적 혼동의 산물이거나 불합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택한 자라도 징계하시며, 악인까지도 하나님의 장중에 두어 인류를 구원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데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요컨대, 기독교의 역설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밝히 드러났던 것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조용히 귀 기울이기를 합니다. 진실을 가리는 말과 행동들이 안개처럼 몰려올 때에도 참 진리 안에 거하며 기뻐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