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16~32)②[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마가복음 15:16~32)②
당시 로마인들에게 집행되었던 가장 극심한 형벌은 주로 칼로 목을 베는 참형이었으며, 십자가형은 거의 식민지인들에게 집행된 극형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는 당시의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형벌을 당하신 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신 사실 자체가 큰 중요성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형벌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 자체에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유대교에 도전한 이단자 내지는 로마에 대한 반란을 모의한 주동자로서 극형에 처한 것으로 보였겠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그러한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학적인 의미를 지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의하고 결박하여 로마인들에게 넘겨주었던 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었고 예수님을 직접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로마 군병들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를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서 인류의 죄에 대한 공의로우신 형벌을 시행하셨으며, 그 결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새 생명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 곧 희생 제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것입니다.
가시로 관을 엮어서 그 머리에 씌웠습니다. 가시에 찔려서 머리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신 주님의 모습은 처참하였습니다. 온 군대 앞에서 주님을 희롱하고 모욕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갑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입니다. 영문 밖의 길을 지나서 언덕에 올라가서 참혹한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해골이라 불리는 골고다 언덕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갑니다. 자원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고통을 나눕니다. 주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기 원하면서도 고난은 함께 나누는 것은 원치 않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두 사람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주님은 정치적인 범죄자였으나 흉악범 강도들 가운데서 처형되었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나 대신 받으신 조롱과 욕은 우리와 나의 죄악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인임을 보여줍니다. 골고다는 한 역사를 매장하고 새 역사를 이끌어 내는 해골의 곳입니다.
◆예배드리며 무릎 꿇는 일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도 나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는지도 생각합니다. 내 모든 죄와 허물을 감당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진정한 종이 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