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마가복음 11:12~26)②[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꽈벼기 2024. 3. 15. 18:31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11:12~26)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뒤에 이어지는 성전 숙정 기사와 직접 연관된다는 점에서, 성전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전이란 의식과 형식주의에 급급하였던 유대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대한 심판 예고는 성전을 발판으로 삼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던 당시 제사장의 권위에 대한 정면 대결을 선포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도래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심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특정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성전의 원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요란하게 떠들면서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던 당시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다운 면모를 상실한 채, 선민으로서의 특권 의식만 사로잡혀 이방인들에 대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나타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이 탄생할 영적 이스라엘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20~26, 예수님의 이적인 권능이 제자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음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러한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 한 가지 분명히 전제해야 할 사항이 있으나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합니다.

 

믿음의 간구란 자기 자신의 인간적이고 세상의 욕망을 채워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부패한 마음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으로써 주께 간구할 때 주님은 분명히 이모든 간구를 낱낱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이전에 먼저 이웃과 화목할 것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 못지않게 인간 상호 간의 관계도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하면서 주위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이거나 스스로 거짓말하는 자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기도하기 전에 먼저 형제를 용서하라는 말씀은 간구의 근거가 용서,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은 용서임을 암시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 저주받아 말라 죽어간 무화과나무 사건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결실 없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죄 곧 곁과 속이 다른 그들의 추악한 위선을 고발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선민이라는 찬란한 이름만 지니고 있을 뿐 그 이름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하던 무기력한 유대 백성들의 허물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바로 우리에게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신다면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말씀하시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얼마나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나의 마음을 살펴보고 주님의 사랑과 심판에 바르게 반응하길 원합니다. 기도할 때 과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구하길 원하며 내 자신을 속이지 않고, 믿음으로 말씀 따라 살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