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8:1~22)[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욥기 8:1~22)
엘리바스와는 달리 빌닷은 처음부터 비난하는 투의 변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빌닷이 보편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정의가 욥의 탄원적인 연설 가운데서 비난당했다고 여겼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그 논지의 핵심으로 삼아 충고를 시작하는 빌닷의 연설이 언급된 8장은 하나님의 공의에는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전반부와 요사스러운 자의 멸망에 대한 옛 시대의 교훈을 언급해 적용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빌닷은 이러한 충고를 통해서 엘리바스와 같이 욥이 죄인이라고 하는 암시적 단언을 드러내어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8장은 충고와 그에 대한 적용의 문제를 핵심으로 해서 재구성해 보면 욥에 대한 정죄 부분과 회개의 촉구 대목인 20~22절을 그 양 축으로 해서 옛 시대 사람들의 교훈으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장면이 8~19절이 삽입된 것으로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빌닷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일을 행하실 수 없는 분이시며 욥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재난을 당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 그러기에 욥은 회개해서 순전한 사람이 되어 주의 축복을 다시 받으라는 것입니다. 빌닷은 부당한 고난에 관계된 문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왜 악과 비극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도 또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빌닷은 자신이 펼치는 상식적인 충고가 인생의 다양한, 마치 신비와도 같은 문제들을 설명해 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던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필귀경의 당연한 논리로 욥에게 충고하고 있으며 옛 사람들의 교훈으로 자신의 논리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한편 빌닷은 신실한 자가 얻게 될 상급을 언급하면서 욥에게 회래를 촉구하고 있으며 자신의 변론을 끌어내면서 욥에게 만일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한 잠시 버림을 당할 지라도 그는 영원히 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본 충고에는 시의 대구적 형태가 많이 언급되어 있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합니다. 즉 8장에는 의로운 집과 악인의 장막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빌닷의 충고가 갖는 주요 핵심이 바로 욥에게 촉구하는 회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주께서 내리시는 복을 대비적으로 서술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가 되라는 빌닷의 논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8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한은 자들은 참된 것을 가르치며,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한다는 것과 빌닷이 행한 것 같은 도식적인 이해와 원리 원칙적인 즈장들은 인생에 있어서 원칙론적인 안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역경에 처한 자들에게는 더 가혹한 채찍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에서 가치와 보람을 창출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것은 절대로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욕구와 야망이 빗나가 어떤 일이나 시작부터 거창하게 벌이다가 나중엔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버리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서도 더러는 그런 빗나간 길을 밟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에 비추어 우리는 오히려 미약하게 시작한 일이 나중에 창대케 된다는 말씀을 깊이 유념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에 하나님을 짜 맞추려고 하는 일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종종 아무렇게나 대하고 쉽사리 판단하는 잘못을 생각을 해 봅니다. 상대의 장점만 찾아 인정하는 습관으로 새로워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