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바댜 1:10~21)②[네가 멀리 섰던 날]

꽈벼기 2023. 11. 2. 21:10

[네가 멀리 섰던 날]

(오바댜 1:10~21)

 

에돔의 구체적인 죄악에 대한 책망과 심판 그리고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바댜가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지서들 속에 나타난 이방 심판, 여호와의 날,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이라는 핵심적 주제를 압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선지자는 에돔의 심판과 이스라엘 회복을 동일 선상에 놓음으로써 이 두 상반된 운명이 동시에 일어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10~14절은 에돔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심판받을 것을 예언하는 전반부입니다. 15, 16절은 만국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중반부이고, 17~21절은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여기에서는 12~14절에 아니하고라는 부정형의 문장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저자는 에돔이 당시의 형제 국가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난을 즐기고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12, 14절에 고난의 날’, 13절에 환난을 당하는 날등의 단어는 에돔이 방관한 그 날이 이스라엘에게는 고난의 날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는 본 단락에서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을 적대하고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12~14절에 에돔은 이스라엘의 환난을 방조했습니다. 특별히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할 때 큰 소리로 좋아함을 나타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13절에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라는 표현은 에돔이 앗수르인이나 갈대아인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내용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14절에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라는 묘사는 열국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을 때 에돔이 유다를 돕기는커녕 화를 피해 도망가는 이스라엘인들의 길목을 가로막고 그들을 살상하였음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방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패망을 기뻐하였습니다. 이처럼 언약 백성을 돕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은 17~21절에서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 합니다. 오바댜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에 대해 잃었던 땅을 소유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 같은 예언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통치하에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함으로써 서서히 성취되어 가다가 B. C 2세기 바카비 영도하에서 유대가 완전한 독립을 이룩함으로써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특히 여기서 언급된 모든 땅들은 하나님이 본래 12지파에게 주셨던 땅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신 기업이었습니다.

 

저자는 약속의 땅 소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을 온전히 지키시는 분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포악을 행한 에돔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희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저주는 역사상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에돔족은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나바티 민족들의 침략으로 근거지를 읽고 주변 여러 지역에 흩어지거나 남은 자들도 나바티족들에게 동화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한 행실을 힘쓰면 장차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으로 갚음 받게 될 것이지만 그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며 원치 아니하시는 악한 행실을 일삼는다면 진노의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에돔과 같은 죄를 짓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할 만큼 강한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내게 변화가 필요합니다. 형제가 당하는 어려움에 무관심 하는 죄악을 범하지 않길 원하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심을 믿고 세상 속에서 불과 불꽃처럼 살아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