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예레미야 11:18~12:6)②[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꽈벼기 2023. 7. 30. 13:52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예레미야 11:18~12:6)

 

18~23, 하나님의 응답과 연결되는 선지자의 호소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해하려고 모의 된 음모와 자기 적들의 의도를 묘사함으로써 이 단락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나돗 사람들의 악한 행위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에 관한 정보는 갑자기 주어진 것이며, 21절에 가서야 비로소 그 윤곽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이처럼 갑자기 고향 사람들의 암살 음모를 접한 예레미야는 엄청난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무죄한 자의 억울한 누명을 옹호해 주신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면한 위협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며 옆으로 물러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선지자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확신하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상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고향 사람들의 암살 음모의 동기는 그가 유다 전체의 종교적, 사회적 생활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의식에 제시되어 있던 배경과 전망이 근본적으로 그릇되었으며 심지어는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도 실패하고 말았다는 강력한 비난은 아나돗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웠던 주장일 것입니다. 그들은 민족의 죄악을 공표하고 나선 예레미야를 자기 마음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자로 취급하고 제거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나돗 사람들을 포함한 전 유다 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배척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2:1~4, 사악한 자들의 번영에 관한 예레미야의 불평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고소하면서 먼저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섭리에 대하여 재차 묻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죄를 근본적으로 미워하신다면, 왜 그 사악한 자들의 길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심으신 후 뿌리가 박히고 성장해서 열매를 맺도록 만드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자신들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던 것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격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 사악한 자들을 끌어내시기를 원했습니다.

 

5~6, 악인의 일시적 번영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만일 현재의 상황을 어렵다고 이해하고 있다면, 장래에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경마와 도보 횡단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만일 예레미야가 사람들과 도보로 경주를 하다가 지쳤다면 나중에 어떻게 말과 경주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범람한 요단강물 속으로 던져졌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만일 평화스러울 때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물으십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악인들의 득세가 더욱 심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번영이 극에 달할수록 파멸이 임박해옴을 설명하시면서 궁극적인 소망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는 먼저 핍박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위 사람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방심하지 말고 자기 주위로부터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 기준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신자의 기준은 시간상으로 볼 때 현재가 아니라 미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환난과 고통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래의 영광과 축복을 생각하며 가볍게 지나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고, 반대에 부딪힐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길 원합니다.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를 나타내게 하시고 더 좋은 상급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