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민수기 22:36~23:12)②[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꽈벼기 2023. 5. 5. 12:32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민수기 22:36~23:12)

 

36~41, 물질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함으로써 두 번에 걸친 발락의 초청에 완강히 거부하지 못했던 발람은 비록 여호와의 방해와 나귀의 꾸지람을 듣고서도 그 뜻을 굽히지 못한 채 마침내 모압 땅에 도착합니다.

 

본문은 그 같은 상황을 다룬 것으로 발락의 극진한 환영과 발람의 위선적인 대답 및 발락과 발람이 바알 산당에 올라 이스라엘 진영을 관망한 내용 등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곧 그들의 악한 계획이 성취될 것만 같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최후가 늘 그러하듯 그들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비참히 죽어가게 됩니다. 실로 거짓 선지자, 술객, 점치는 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진리를 표명하며, 순간적으로는 빛을 발하는 것 같으나 항상 불의를 일삼으며 종국에는 멸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그러한 무리를 철저히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3:1~12, 이곳에서 복술가 발람은 자신의 고향 메소포타미아의 풍습에 따라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의 동의를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락과 발람의 의사와는 반대로 이스라엘을 결단코 저주할 수 없는 이유를 발람의 예언하는 입술에 두셨습니다. 이에 발락이 심히 불평했으나, 발람은 여호와의 강권적인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피력하였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발락이 제시한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발람은 하나님께 묻기도 전에 이미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계획을 그 마음에 굳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결정은 자기가 하고 하나님께는 눈먼 노예처럼 힘만을 빌려달라는 식입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고 침해한 월권행위였습니다. 이런 행동은 발람이 하나님을 유일신 여호와로 믿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그에게는 여호와가 고유 명사가 아닌 보통 명사 중 하나로 본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우리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데, 우리는 흔히 자신의 욕심을 추구해가면서도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둘러대곤 합니다. 이런 어리석음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발람은 어떤 면에서 훌륭하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습니다. 불행히도 그것이 단 일회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사로잡혀 영화롭고 복된 상태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모두 나 자신의 욕망과 교만을 떨쳐버리고 오직 그분께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실한 도구가 되는 것이 참되고 복된 도리로 생각됩니다.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기 원합니다. 끝까지 나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며, 나의 미련한 마음과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