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마태복음 18:21~35)③[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

꽈벼기 2023. 3. 9. 09:47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

(마태복음 18:21~35)

 

21~35절은 끝없는 용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에 대한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징계의 불가피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겨진 자들이 회개하면 교회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까? 물론 본문은 다분히 개인적 차원에서의 용서를 다루고 있다 하겠지만 공동체 차원의 용서 또한 간과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베드로가 권징에 대한 가르침을 들은 후 용서에 관한 물음을 던진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셈입니다. 베드로는 가는 곳곳마다 병자를 치유하시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을 늘 상 목격해 왔던 터라 17절과 같은 단호한 징계에 대해 일말의 의아심을 가지고서 용서에 관한 문제를 끄집어내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편 당시 유대 랍비들은 세 번 까지 용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응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열망에서 일곱 번 용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씩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곧 끝없는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그렇듯 끝없이 용서해야 할 이유를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 단순하면서도 예리하게 주지시켰습니다. 실로 용서는 그냥 선심으로 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하여 주시고 또 남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도가 힘써 행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용서라는 말은 간단합니다. 그 안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그리스도 복음과 그 요체가 들어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부터가 하나님의 용서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를 대해서라도 횟수에 관계없이 끝까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진정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체험했고 그러한 용기를 통해 타인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활짝 열면 모든 사람이 활기를 얻게 되고 만물까지도 생기를 얻습니다. 그러기에 용서를 체험한 우리는 절대로 타인에 대한 용서를 지체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은 사람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큰 피해로 말미암아 인간적으로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고 감싸주지 못할 정도로 사건이 크기에 아직 가슴이 아픕니다. 이렇게 마음이 닫히고 있는 것은 주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생명과 직결될 정도로 상처를 입었으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악한 자를 세상 법보다 하나님께서 심판해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