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전도서 3:1~15)②[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꽈벼기 2022. 12. 2. 10:34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서 3:1~15)

 

1~10,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일에 대해서 기한을 두셨고 섭리로 역사하신다고 역설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전도자는 28번씩이나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한 이유는 신학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재난들은 하나님의 작정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절망하지 말고 구속을 소망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섭리적인 역사에 따라 출생과 죽음, 심음과 거둠, 기쁨과 슬픔, 획득과 상실, 외침과 침묵, 전쟁과 평화의 때를 반복합니다.

 

이처럼 만물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고유의 시기가 있으므로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사건의 시기나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인생에 주신 모든 일은 가장 세밀한 것까지도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말씀은 성경 전반에 걸쳐 암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심으로써 창세 전에 세우셨던 구속경륜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점을 독특한 시각에서 강조합니다.

 

본문에는 어떤 어두운 운명에 대한 사상이 전혀 없습니다. 삶의 여러 부분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통제 아래 진행되고 있으므로 운명론적 견해는 전적으로 배제됩니다. 설혹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움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을 기대하며 영원에 대한 감각을 지속해서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뜻과 때를 무시하고 사사로운 인간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수고와 고통을 허용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기 뜻대로 사는 인간의 모든 행사는 허무한 결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11~15,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기술하는 본문을 먼저 하나님의 창조 사실과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언급한 다음, 삽입 형식으로 인간의 본분을 밝히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영원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일의 영원성은 인간의 연약함, 인간 수고의 허무함과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행사의 영원성은 결국 유한한 인간의 연약성을 나타내고, 필연적으로 인간 수고의 허무함을 부각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여기서 하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주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만을 경외하도록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12, 13절에도 통시적으로 볼 때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 수고의 허무성이 그 저변에 깔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허무한 결과만을 양산하게 되므로 오직 하나님 안에서 선을 추구하며 낙을 누리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일관성 있게 온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존재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도 손상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헌신과 노력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경외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구속을 대망하며 악한 시대를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답답할 때마다 주의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