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히브리서 11:1~12)③[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꽈벼기 2022. 7. 19. 09:25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히브리서 11:1~12)

 

1~3절은 믿음의 정의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삶을 경주한 선진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으며 미래에야 성취될 약속을 굳게 신뢰하였습니다. 더욱이 고통스러운 일들과 시련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장애로써 가해졌으며 그것들은 결코 그들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보이지 않는 증거이 두 가지로 믿음을 정의합니다. 실상이란, 믿음을 참고 기다리는 소망으로 간주합니다. 좀 독특합니다. 여기서 실상이란 그 자체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으로 실체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으로 굳게 믿고 그대로 행하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실체들이 존재함을 알게 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대상에 대한 단순한 앎으로써의 지식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지식 이상의 확신을 말하는 초이성적인 것입니다.

 

증거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증거로서 우리 안에 아로새겨짐에 따라 우리 안에는 믿음의 삶을 가능케 하는 역동적 힘이 생깁니다. 이는 성령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흔들림 없는 확신 가운데서 살도록 하며 결코 낙심하지 않게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삶의 전 영역 속에서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여유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믿음의 소유자들이 연약성을 띤 인간일지라도, 모든 사건과 상황을 통치하시며 믿음의 소유자를 완전케 하시는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인간의 삶을 통해 실감나게 표현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창조 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장엄하신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창조 사역에 참여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창조부분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세계가 바로 하나님의 세계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인식한 자는 믿음으로 행동했으며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보여주려 하였습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가인과는 달리 정결한 마음으로 믿음의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벨이 드린 예배의 특징은 헌신된 마음입니다. 예배의 가치는 겉보다는 마음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아벨의 예배는 믿음의 예배였습니다. 다음으로 피의 제사였습니다. 가인은 농사하여 땅의 소출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을 쳐서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끝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가 제일 좋은 것으로 잡아드렸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종류와 성격보다는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리스도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드리심으로써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는 하나님과 매일매일 동행합니다. 에녹에 대한 창세기의 짤막한 기사는 에놀이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에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주되심을 인정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복종시킨다는 의미로 하나님에 의해서 삶이 통제를 받으며, 하나님을 위해서 삶을 영위한다는 뜻입니다.

 

죄의 삯인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었다는 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긴 것이며 초자연적인 체험입니다. 이는 죄와 허물이라는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의 욍되신 분과 진실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신을 떠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며 주 예수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자의 모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독자 이삭을 믿음으로 아낌없이 내어드렸습니다. 그의 순종은 말씀하신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에 기인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시며, 자신의 장래을 예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듯 그가 순종한 근본 이유는 약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 약속은 그의 순종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자신의 본토를 떠났던 것입니다. 이는 적극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이미 받은 것을 굳게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나그네 삶을 거부하고 세상을 향하고 있지나 않는지 돌아봅니다.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하늘에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눈이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실패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고 바다에 뛰어내려 그 위로 걸어가다가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두려워했듯이 성도는 주님만을 바라볼 때 믿음의 길에서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걸어 갈 수 있도록 동행할 때 믿음이 흔들리지 않길 원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 걷는 다면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에 있길 바라며 나의 형편과 나를 변화 시켜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