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요한복음 6:1~15)③[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꽈벼기 2022. 1. 18. 08:58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한복음 6:1~15)

 

이 표적의 성격을 한 마디로 불가능한 가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본 단락의 성격을 가장 고농도로 압축시켜 주는 초절전형 문구입니다. 여기에 언급되는 제자들은 빌립과 안드레뿐입니다.

 

군중들의 배고픔을 인식하신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할 요량으로 던진 질문을 통해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빌립은 군중들이 먹을 최소한의 식사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함으로써, 불가능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한 어린아이의 식사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 역시 불가능한 사실임을 전제한 행동입니다.

 

더구나 오천 명 이상 되는 장정의 한 끼 분으로 제시되는 제자들의 산술은 불가능성의 성벽을 더욱 굳게 할 뿐입니다. 이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돈은 머리 둘 곳도 없는 예수님과 생업을 버리고 따른 제자들의 형편으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해당합니다.

 

또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당시 극빈층의 어린아이 식사에 해당하는 너무도 빈약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천 명을 급식해야 하는 당장 필요는 제자들의 관점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불가능성의 골짜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예수님께서 보이신 가능성의 능선은 더욱 밝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오천 명이 넘는 장정들이 포식했을 뿐 아니라 먹다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될 정도였습니다. 불가능성의 정황 가운데서 예수님은 가능성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본 단락에 나타난 오병 이어의 표적에 불가능한 가능성이라는 성격을 규정해도 무방하리라 여겨집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병 이어의 표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기사입니다. 구약 성경의 내용에 의하면 광장에서의 잔치나 식사는 번영의 상징일 뿐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축복의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종종 잔치에 비유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도 이 같은 원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서, 장차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서 있을 잔치를 기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오병 이어 기적을 통해서 자신들이 고대했던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았으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성경이 예고했던 그리스도와 같다고 했고 오병 이어의 표적을 통해서 자신이 장차 도래할 메시아 향연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병 이어의 표적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대한 계시의 목적으로 하여졌지만, 군중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무관했습니다. 그들은 오병 이어의 표적을 광야에 내린 만나의 재현으로 여기고, 이 능력의 시행자인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병 이어의 표적은 예수님의 실체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육신의 양식에 관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자신을 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도 아울러 구하게 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물을 나누어 가지고자 하는 사람이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야고보가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요 능히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원하나 어디서 드려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의 욕심에 맞추려고 하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