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15)③[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5:1~15)③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발견하시고 몸소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특히 본 표적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주도성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던 수많은 각색 병자들 가운데서 38년 된 모진 병을 앓아온 사람을 선별하셨다는 사실과 그 치유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38년 된 병자는 아무런 믿음이나 소망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물음에 그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려는 의지도 없이 그동안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변명조로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절망적이며 비참한 상태에 있는 그를 불쌍히 여겨 권능의 말씀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광야에서 38년 동안 방랑했던 역사적 사건을 연상하게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38년 된 병자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의지까지 마비되어버린 영적 무기력한자로서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미리 보여줍니다.
그는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신의 불행한 현재 상태에 대해 불평서린 어투로 말하였던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늘 불평을 토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흡사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한 모든 인간은 38년 된 병자와 같이 영적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병자는 육체적으로 자신의 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심한 장애인인 동시에 치유 받고자 하는 열망조차도 없었던 영적 중상자입니다.
뿌리 깊은 병의 원인은 바로 치유 받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환경에 얽매여 절망 가운데서 불평밖에 나올 것이 없었던 그는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 된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외적으로 허우대가 좋고 화려함과 온갖 치장 속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듯한 인간들의 모습을 오늘날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이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적으로 얼마나 무기력하며 죄의 껍질로 얼마나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전적 무능력으로 인해 아득한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병자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초자연적 권능의 말씀을 주심으로서 희망을 불어넣으시며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의 순간순간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목적은 백성들이 온전하고 새롭게 변화되어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삶을 통하여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온전하게 변화된 다음 또한, 세계가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므로 자기도 일하신다는 동등의 의미를 나타내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은혜로운 계시를 보여 주시므로 유대인들이 그것 때문에 죽일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계시의 가장 요긴한 점을 반대한 셈입니다.
♥빛과 생명 되시는 주님께서 악성 병자를 치유하신 능력으로 병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길 원합니다.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내 맘과 영이 날마다 기뻐 찬송하며 하나님 치유의 손길을 바라보며 영광 돌리길 기도합니다. 가끔 우리는 예배할 때에 종교적인 전통과 적법성 여부에만 관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죄의 병, 나쁜 습관, 나쁜 관계, 등등 내게 오래된 병이나 죄는 없는 지 살펴봅니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내 맘과 영이 날마다 기뻐 찬양하며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바라보며 영광 돌리기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