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요한복음 4:1~14)③[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꽈벼기 2022. 1. 12. 17:55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4:1~14)

 

예수님께서는 온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이루시기 위해 유대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던 중 사마리아 땅을 밟으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잃은 양들을 찾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절대 그냥 지나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신 데에는 나름대로 어려운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 장벽들을 극복하시고 전도를 단행하신 예수님의 적극적인 자세를 주시할 때 우리는 이 전도가 지니는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의 상종을 완전히 금하였고 사마리아인들 또한 유대인들에게 적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 나름대로 그리심 산에 성전을 갖고 예배를 드렸으며 경전으로서는 모세 오경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의 어두운 과거 역사로 인하여 빚어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반목질시는 통행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직선 코스가 바로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는 것이었는데도 모든 유대인은 한사코 요단강을 건너 베레아를 거치는 우회 길을 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역사적, 민족적 장벽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역사적 민족적, 장벽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해묵은 관례를 개의치 않고 금기의 지역을 방문하신 예수님의 혁신적 행동은 구원이 육체의 혈통이나 민족적 감정을 초월하여 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위의 성격을 갖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전도하신 또 다른 의의는 당시 옳지 않다고 가르쳐 왔던 여자와의 대화를 금기시하던 때에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이례적 행동이 놀라운 점은 그 여인이 부정한 과거를 지닌 여자임을 아셨는데도 소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은혜를 인종이나 민족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와 무관하게 영의 양식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물 붓듯이 부어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의 논리 전개를 보면, 인격적인 원리를 사용합니다.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며,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적용합니다. 마음을 연 여인은 물을 달라는예수님의 요구에 입을 엽니다.

 

여인은 당연히 주님의 요청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때 예수님께서는 물이 있는 곳에서 생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므로 여인의 마음속에서, 더욱더 고결한 것에 대한 욕망, 곧 영적 호기심이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초청의 원리인 말씀으로 자신이 주는 생수를 먹으라고 초청하셨습니다. 대화의 열기는 무르익어 지금까지 사마리아 여인의 관심을 영적인 문제로 고조시킨 예수는 이제 적극적인 자세로 여인에게 구원으로의 초청을 제시하였습니다.

 

생수이신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각에도 모든 사람에게 편견 없이 그 생수를 나누어 주기를 원합니다. 주님밖에는 살 소망이 없음을 알고 자신의 죄인 됨을 솔직히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영혼을 보고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는 자만이 구원의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이웃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참된 삶을 갈구하며 마음을 열기 원합니다. 구원과 소망이 된 예수님, 참 안식은 주님 안에서 누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