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15~31)②[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사사기 16:15~31)②
사랑하는 여인이 울면서 애원할 때 삼손은 고민합니다. 신앙이냐 사랑이냐, 두 갈래 길에 선 삼손은 죽을 지경까지 됩니다. 물질 만능주의가 만들어 놓은 향락과 신앙의 갈등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삼손같이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담대하게 맡기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쾌락과 여인의 달콤한 사랑 때문에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의 비밀을 폭로합니다. 머리털을 잘라버리면 모든 사람과 같이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신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잘라버린 셈입니다. 믿음을 포기해버립니다. 말로가 비참해집니다. 정욕과 세상 쾌락을 버리고 믿음을 선택하여 신앙의 승리자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키지도 않은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고초를 당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삼손을 떠납니다. 삼손을 그것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없으면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와야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좌우합니다. 삼손은 눈이 뽑히고 놋 줄에 매여 맷돌을 굴리는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니 적의 먹이가 됩니다. 힘의 능력이 자기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 그는 적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선수는 출발보다 끝이 좋아야 하고, 성공자는 그 성공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잘못 했을 때 부모에게 손상이 가듯이,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 했을 때도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이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축배를 듭니다. 하나님께서 모독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결단합니다. 죄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뼈저리게 체험을 하고 통탄합니다. 그는 맷돌을 돌리며 회개합니다. 자신의 나약성과 하나님의 위대성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속죄의 길인가 생각합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적들을 멸망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택하기로 결단합니다.
삼손의 최후는 죽음입니다. 마지막 생애에 대한 치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삼손의 종말은 수치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최후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여인으로 인한 수치스러움이 없었다면 정말 좋은 사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명예가 손상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인생은 누구나 삼손처럼 실패할 수 있으므로 항상 말씀 앞에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인이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삼손이 머물렀던 들릴라의 침실이 어떠한 자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약간의 방심으로 빠진 자리입니다. 안일한 생존이 최상의 행복인 양 쾌락과 방종과 안주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나의 선택이 하나님의 뜻과 합하는가를 항상 먼저 생각하길 원합니다. 삼손의 실패를 거울삼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