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44~56)③[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4~56)③
44~49절, 예수님의 운명에 대한 그 시각을 언급하면서 누가는 제육 시쯤이라고 어림잡았습니다. 현대시간으로 구분하면 오전 아홉 시부터 정오까지 세 시간 매달린 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신 시각은 제 구시가 됩니다. 해가 빛을 읽고 어둠이 임했던 사실로 볼 때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보입니다.
세 시간에 걸쳐 어둠이 깔린 후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대속하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새롭게 살길’이 열렸음을 상징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유대교의 가증스러움에 대한 심판 경고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외침입니다. 구속 역사를 온전히 완수하신 후 운명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사형 책임자로 보이는 백부장은 예수님의 운명 후 ‘정녕 의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은 이제까지 당했던 예수님의 수치스러움과 고난이 정당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옳았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모인 많은 사람의 반응은 전날의 잘못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들의 양심이 심하게 아팠을 것입니다. 누가는 십자가 처형에 관한 이야기를 예수님의 측근자와 고향 사람들을 목격자로 언급함으로써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떠나갔지만, 이들만큼은 떠날 수 없어 끝까지 지켜본 것입니다.
50~56절, 공회 의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의 신분과 명예에 심각한 위협을 무릅쓰고 장례를 치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은 오늘도 성도들을 향해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실 것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 ~~~
요셉에 의해 주도된 장례를 멀리서 본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누구도 돌보지 않는 예수님의 시신을 향품과 향유로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임박한 안식일로 인해 여인들은 시신 처리를 다음으로 미루고 돌아갑니다. 본 장에서 집중적으로 언급된 예수님의 수난사는 종결되며 24장 부활의 새벽으로 옮겨 갑니다.
◆세 시간의 어둠은 예수님께 얹힌 우리의 죄짐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암시해 줍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사망이 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나타난 즉각적인 결과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지성소로 가는 문이 예수님을 통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언제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는 나의 계획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나를 새롭게 하길 원하며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