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28~40)③[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누가복음 19:28~40)③
우선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겸손하고 온유하신 ‘평강의 왕’이라는 사실과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써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고자 마침내 수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의의를 지닙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은 ‘승리의 입성’이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스가랴 9:9에 예언된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이 땅에 입성하셨음을 만민에게 선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 내포된 이러한 구속사적 의의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지 불과 나흘 후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나 다시 사흘 만에 부활의 승리를 이루실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서 유대인의 혈통을 좇아 나신 예수님의 자기 동족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 끝까지 회개치 않고 죄 가운데 멸망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죄인 하나라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전하러 오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평화를, 또 이웃과 평화,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입술과 행동으로 열심히 해 찬양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로 인해 찬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찬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며 찬양으로 영접하기를 꺼렸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막을 수 없습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 드리지 못한다면 그 지으신 만물들이 그를 찬양할 것입니다.
41~44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성을 보시고서 눈물을 흘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사복음서 기자 중 누가복음만의 독특한 강조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겉옷을 길 위에 펴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였으며 앞뒤에서 ‘호산나’를 크게 외치며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거라는 기대로 인해 잔뜩 흥분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예수님의 눈에는 그 성의 파멸과 재난이 예견될 뿐이었으니, 눈물만이 가득하셨던 것입니다. 일전에 예루살렘을 위해 한탄하셨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신 까닭은 A.D 70년에 있을 로마 황제 디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예견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선민다운 자태를 상실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들의 영혼을 걱정하셨기 때문입니다.
45~48절, 예루살렘 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으며 그중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 신앙’이 생활의 바탕을 이루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이 성전은 고대의 가장 훌륭한 건물들 중의 하나입니다.
성전은 항상 유대교의 중심이었으며,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 곳도 스가랴가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 받은 곳도 성전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시므온으로부터 예언의 말씀을 받은 곳도 성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교의 뿌리는 바로 이 성전이었으며,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이야기도 그 시초는 성전에서 시작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전은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유대교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이보다 더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 만남의 장소는 어느 한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에선 하나님과 인간의 만나는 장소가 사실상 예루살렘 성전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은혜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된 오늘에서는 어떤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모인 곳이면 어디나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리의 메시아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제자들은 모범적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있으니 가져오라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또한, 겉옷을 벗어 안장을 만들고 길에 펴기도 하였습니다. 최대의 헌신과 예를 갖췄습니다. 나귀 주인도 흔쾌히 허락 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 쓰시겠다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평소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찬양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좋은 방법의 본을 받아야 할 우리인 것을 알게 합니다.
이처럼 성전의 깊은 의의를 염두에 두면, 성도는 모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을 각자의 믿음 깊은 곳에 지닌 셈입니다. 즉 ‘성전’은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 관계를 아름답고 신뢰성 있는 것이 되게 하려고 각자의 성전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 열심히 찬양을 드리길 원합니다. 주님처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기꺼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와 쓸 것을 채우게 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전은 그 백성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 성전은 돈을 사랑함이 가득 찬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위선을 지적합니다. 나는 마음의 동기와 삶을 돌아보며 늘 회개합니다. 순수한 동기와 자세로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시고 정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