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31~43)③[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누가복음 18:31~43)③
31~34절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면서 인간의 모든 개인적 감정과 뜻에 분분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초연하게 나아가셨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입성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예수님께서는 당할 모든 사건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연합하여 자신을 죽일 것과 그 과정에서 온갖 조롱과 보복과 멸시와 고통을 겪을 것을 예견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통과 죽임을 당하실 뿐만 아니라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지상 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 왕국만을 생각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엄청난 시험을 겪을 것이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대적들을 이기지 못하고 무력하게 넘김을 당할 때 그들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는 너무도 다른 사태가 벌어지므로 절망과 낙담 속에 빠질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걸어갈 길을 확고하게 표명함과 동시에 제자들이 장차 겪을 시험에 준비토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김으로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려고 수난을 예고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 제자들은 믿음이 더욱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당혹감에 어쩔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심적 상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은 것에 대한 물질적 대가를 바란 그들의 보상 심리에 기인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제자들은 여전히 세속적 야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수난을 예고하신 예수님께 슬픔을 나타내거나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진정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정황은 인간적으로 주님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동고동락했던 자들이건만, 그들은 주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당혹감 가운데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예고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35~43절, 고난의 잔을 마시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예루살렘으로 다가서고 있는 시점에서도 병자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주위 사람의 조롱과 훼방을 무릅쓰고 구원의 손길을 사모하는 소경 거지의 애절한 믿음이 잘 나타난 부분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치유 이적입니다.
소경의 믿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본 사건은 전후 문맥상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이 예고된 앞 문단에는, 깨어 있지 못하고 여전히 세속적 야욕에 불타 있었던 제자들의 영적 암흑 상태가 기록되었습니다.
반면에 본문의 소경은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이적을 나타내는 권능을 직접 보지도 않았고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율법 지식에 해박한 것도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나 랍비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메시아로 알아보는 놀라운 영적 안목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의 사건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탄은 누구도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기를 원치 않아서 우리의 이해를 혼돈케 하려고 애씁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에서 헤어 나오기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고 자신들의 문제를 이용하여 동정을 얻거나 다른 이들을 그들에게 붙잡아 매어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소경의 요구를 정확히 듣기를 원했습니다. 소경이 예수님께 보기를 요청하였을 때 그는 원했던 것보다 더 큰 것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참 많습니다. 나의 소원이기에 간절히 구합니다. 언제나 말씀과 기도로 구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