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2:1~9)②[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시편 52:1~9)②
1~5절의 말씀은 포악한 자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합니다. 1~4절은 한 포악한 자의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5절에서는 그러한 사악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에돔인 도엑을 사악하게 만든 것은 끊임없는 욕심 곧 재물과 명예 및 권력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였기에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만한 가치에 대해서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대신할 만한 숭배의 대상을 갈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엑은 사울의 목자 장이었으므로 이미 상당한 권세와 재물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는 생수가 아닌 소금물을 마신 자가 목이 더 타므로 그 소금물을 또다시 거듭 마실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포악한 자는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육신의 정욕을 진작 버려야만 했지만, 근본부터가 잘못된 쾌락 추구로 영원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재물과 권세에 대한 욕심은 일만 악의 뿌리이며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6~7절은 포악한 자의 멸망이 일개 조롱거리밖에 되지 못할 것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포악한 자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멸망한다는 사실이 언급된 데에 이어 여기서는 포악한 자의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의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밝히 드러내서 포악한 자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모든 사람이 쉽게 인식할 수 있게끔 그 포악한 자를 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앙의 정도를 따르는 자들이 일시나마 품었던 하나님에 대한 회의를 완전히 불식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의인들의 본문과 같은 반응은 절대 악인들의 멸망 그 자체를 기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남으로써 그분의 살아 역사하심에 대한 신뢰가 굳어질 수 있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실현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확인한 우리는, 모든 이에게 전함이 마땅합니다.
8~9절을 끝으로 시인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가 얼마나 큰 축복 상태에 있는지를 감사 찬양하며, 52편을 끝맺습니다. 당시 무고한 아히멜렉 제사장을 참소함으로써 사울의 신임을 크게 얻었을 도엑은, 언뜻 볼 때는 잎이 무성하여 싱싱한 감람나무처럼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으며, 언제까지라도 꺾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도엑은 뿌리 뽑힌 나무인 반면,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푸른 감람나무였습니다.
다윗은 먹을 것 없이 쫓겨 다니는 형편이었지만 최후의 관심사는 자신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의 여부였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뿌리내리지 않은 모든 일은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으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곧 오실 예수님 앞에서 악인은 그 마각이 드러나 영원한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도 말며 그와 회동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충정과 의지하는 곳으로 삼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악인의 반열에서 구하시고 약속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적 상황으로 보아 나에게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인자하심만 의지하여 푸른 감람나무처럼 살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