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0:1~17)[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편 40:1~17)
감사와 찬양이 돋보입니다. 시인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었던 무력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기나긴 고통과 질병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인내로써 소망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끈질긴 간구는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에 응답하신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고통의 자리에서 건져내어 ‘반석’, 즉 안전지대로 옮기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발걸음은 든든하게 세워졌습니다.
구원을 체험한 다윗은 하나님께 올릴 새 노래가 자기 입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주신 새 노래는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본 사람들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친 자들을 가치 있는 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만 가장 존귀한 분으로 여기기에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고 망령된 자를 멸시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너무 많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도 많으므로 그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어 이 비밀이 구원 역사가 나타날 때까지는 천사들에게도 감추어졌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늘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의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피나 제물이 아니라 피가 상징하는 생명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속죄제 드림의 예표하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시인은 하나님께서 순종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보입니다.
9~10절에서 시인은 적극적인 증거와 소극적인 증거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의 입술을 닫지 아니하였고 주님의 의를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꺼리거나 숨기거나 감추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윗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기쁜 소실을 전했고, 하나님의 성실한 구원을 전파하였습니다.
그가 증거로 제시하는 ‘의의 기쁜 소식’이란 하나님께서 어려운 자리에서 그를 건져내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 은혜가 너무 크므로 입술을 닫지 못하여 계속 증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화중에서 그 사실을 숨기지 아니하고 선포하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많은 대중 앞에서 담대히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전하는 ‘의의 기쁜 소식’은 우리를 대속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암시한다고 보입니다.
11~17절, 탄식의 간구가 이어집니다. 구원을 체험했다고 해서 원수들로부터 완전히 놓임을 받게 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구원을 호소하는 간구를 합니다. 그의 기도는 죄로 말미암아 맞게 된 영적 침체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와 원수들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기도로 나누어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로서 그 구원의 은총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셀 수 없을 만큼의 재앙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긍휼하심과 인자와 진리로 보호하여 주시지 않으면 자신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듯이 그는 심각한 고통과 마음의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간구에서 시인은 두 종류의 ‘구하는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들’과 ‘주를 찾는 자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경건한 자들과 불경건한 자들로 구분되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이 불경건한 원수들이 자기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영혼, 즉 그의 생명을 죽이려고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하’하면서 다윗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다윗의 아픔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시인은 ‘주를 찾는 자들’에 대하여는 원수들과 완연히 다른 결과에 이르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주를 찾는 자들이란 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바라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그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기를 기원하고, 그들의 입에서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는 고백이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되돌아가 자신이 한없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임을 자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를 구원하시며 배려해 주실 것이라고 되새깁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임을 알고 있기에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더욱 절대적인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도움이신 하나님께서 속히 자신을 구해 달라는 간구로 이 시를 마치고 있습니다.
◆구원은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가 믿음에 이르는 것은,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정들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의의 행실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 나아가 천국을 대망하고 종말론적 구원을 기대하는 것 등은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었습니다. 실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다다를 때까지 구원의 행보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베푸신 은혜를 늘 증거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기 전에 매일의 삶에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현재 나의 처지가 궁핍하고 가난해도 오히려 주께서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내가 주님을 찾을 때 주님에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