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창세기 37:18~36)[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꽈벼기 2020. 9. 2. 07:45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창세기 37:18~36)

 

18~28, 형들의 평안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갖은 고생 끝에 찾아온 요셉을 형들이 모함하여 해쳐 애굽으로 팔아넘기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20절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요셉을 본 형들이 그를 죽이기로 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21~24절은 르우벤의 만류로 요셉이 생명만은 부지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25~28절은 유다의 제의로 때마침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넘기는 장면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르우벤과 유다의 경우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기는 하겠지만, 그련데도 야곱의 열 아들은 공통으로 요셉을 동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원수이자 자신들을 우습게 여기는 망나니 정도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요셉의 수고와 우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악으로 선을 갚으며 거짓으로 진실을 덮어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이미 가인에게부터 찾아볼 수 있는 형제간의 미움과 질투, 시기라는 뿌리 깊은 인간의 죄악성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는 말씀의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라는 말씀을 폐부 깊이 명심하여 항상 이를 실천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상과 같은 요셉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예표론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곧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으니 오히려 자기 백성들로부터 배척받고 십자가에서 수난당하신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29~36,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긴 형들이 계교를 부려 마치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양 아비 야곱을 속이는 장면입니다. 이는 일전에 야곱이 아비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의 장자 권을 도둑질한 사건을 영상 시켜 주는데, 이와 똑같이 이제 야곱은 자신이 도리어 아들들에게 속임 당하고 사랑하는 요셉마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야곱의 집안에 찾아든 모든 비극은 바로 야곱 자신이 뿌려 놓은 죄악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이 아들을 잃은 것 역시 그가 뿌린 죄악의 요소가 집안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증명하고 있는 성경에서 뒷받침됩니다.

 

물론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회개로 하나님의 관계 회복을 통해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으십니다. 물론 그 물으심은 죄의 심판으로서가 아니라 책망으로서 다가옵니다. 야곱은 지금 일생을 사는 동안 자신이 저지른 간교한 술수의 대가를 되받고 있는 것입니다.

 

29~30절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요셉이 처리된 것에 대하여 르우벤이 탄식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31~35절은 요셉의 실종 소식을 접한 야곱이 크게 애통해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36절은 요셉이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에게 팔렸다는 기사입니다. 아무러하던 이상과 같은 비극적인 인간 역사에도 불구하고 언약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요셉의 애굽 진출로 말미암아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으니 실로 오묘한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를 범한 것이 있다면 위장하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파괴된 관계가 있으면 속히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단을 이길 힘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또한, 죄의 씨를 심어 그 싹이 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기보다, 의의 씨를 심고 그 싹이 나는 것을 보고 열매를 기다리는 소망스런 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길 원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의 감정들을 없애 달라고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