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19)②[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린도전서 14:1~19)②
1~12절,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하는 사람도 많고 예언하는 사람도 많아 각기 자기가 더 큰 일을 한다고 자랑하며 자기와 다른 은사를 가진 자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먼저 사랑을 추구하라고 명하면서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특히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비교되고 있습니다.
방언은 신비스러운 말로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하는 것인 반면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에게 말하되 교회의 덕을 세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방언이 개인의 신앙에 확신과 기쁨을 심어준다면 예언은 공동체에 희망을 심어준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예언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비밀, 그리고 앞으로 될 일을 부분적으로 미리 드러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새로운 희망과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에서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은사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가진 신자들은 방언을 해석하는 은사를 겸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통역이 없는 방언은 영이 받는 축복을 마음이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방언을 통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지적으로 깨닫고 그것을 삶에 적용함으로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13~19절, 그렇다면 방언은 신자에게 무익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방언은 분명한 성령의 은사이며 바울도 이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방언의 사용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가진 신자들은 방언을 해석하는 은사를 겸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통역이 없는 방언은 영이 받는 축복을 마음이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방언을 통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지적으로 깨닫고 그것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공중 예배 시에는 불신자를 위해 예배드리는 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도해야 합니다. 방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불신자는 통역이 없는 방언 기도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방언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방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배려도 중요시하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교회에서나 방언의 은사를 공중 예배 때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바울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의 은사를 남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려는 유치한 생각을 버리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는 성숙한 행동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사실은 예언이 방언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히 예언을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불신자에게 하나님의 현존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줄 수 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책망의 메시지를 주어 죄를 깨닫게 하며 스스로 판단하게 하며, 또한 그 마음에 숨은 일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예언의 은사를 구하고 이 은사를 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언에 대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서로를 위안하고 세우는 일이기에 가장 복된 일일 것입니다. 기능을 상실하게 될 때 이미 교회로서의 존재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 바른 예언의 의미와 그 실천을 세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절대 방언의 은사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반대한 것은 공중 예배에서 통역 없이 하는 방언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를 축복하는 일은 자신을 축복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예배드리는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그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다는 표적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원하는 불신자들은 이미 믿는 자들의 예언을 통해 나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되어 함께 예배드리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 주시길 기도하며 진정으로 사모해본 일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은사를 달라고 기도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은사를 나 사신을 위한 이기적인 방편으로 삼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방언은 바울의 가르침대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나의 삶 속에서 말씀이 살아있는 능력으로 나타나길 원합니다. 내가 낙심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기도로 돕길 원합니다. 나보다 연약한 자와 불신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