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11:1)[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14~11:1)
14~22절,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향하여 지혜 있는 자들이라 말하면서 그들의 자랑거리는 상황에 대한 이해 자체였습니다. 고린도는 우상의 도시였던 만큼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조차도 우상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그들이 쉽게 큰 관심 없이 대강 보아 넘기고 있는 진리의 핵심을 찌름으로써 그들의 자랑거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 사단과 연합하는 자가 된다면 그들이 자랑하는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독교나 유대교, 그리고 이방 종교의 의식은 말과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은 실제로 그 종교에서 섬기는 대상과 교통하는 자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경배자들은 종교의식의 이면에 현존하는 영적 실재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예를 들어 제물을 먹는 자와 제단과의 일체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신자가 축복의 잔과 떡을 나누는 이 의식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일체가 됨을 암시합니다.
나아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는 동시에 신자끼리도 일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형성하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서 주의 만찬의 의미를 역설하는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가 우상 숭배의 문제와 어떻게 직결되는가를 논함으로써 결론에 도달합니다. 지식 있는 고린도 인들의 견해와 같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배후에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에게 제시하는 것은 단지 아무것도 아닌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영적인 실재에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아무런 의식 없이 이방 신의 제사 의식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이방 종교를 주도하는 귀신과 연합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단 세력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구원에서 이탈하도록 우상 숭배라는 무기를 가지고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오는 세계가 바로 영의 세계입니다. 고린도 인들은 이러한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데에 그들의 결정적인 잘못이 있었습니다.
10:23~11:1, 본문에서 바울은 먼저 개인주의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절제되고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에 자유로우나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는 데 본질적 성격이 있습니다. 바울이 앞장에서도 자신의 실례를 들어 강조하였듯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누림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함으로써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경우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도들이 불신자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그 음식이 우상의 제물이라고 가르쳐 준다면 성도는 그것을 알게 한 자와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의 출처를 알지 못하였을 때는 상관없으나 만일 누가 그 음식이 제물임을 지적한다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 자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보고 우상과 교류해도 괜찮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치 있는 삶의 자세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이제 장기간 논의하였던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를 본문에서 마무리 짓고 있거니와 실상은 다음 장 1절까지 계속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아웃에 대한 사랑이 결부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나 먹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사랑의 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5가지 중요한 사랑의 법칙을 제시합니다. 첫째, 자기의 자유를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 둘째,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 셋째, 자기의 이익이나 성취를 추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라, 넷째, 자기의 개인적 구원에만 몰두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힘써라, 다섯째, 자기의 명성을 좇지 말고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라
◆만찬의 의미는 나눔입니다. 교제를 일컫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이처럼 서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만찬에 참석한 그리스도인들은 만찬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와 거기에 참석한 지체들과 서로 나눕니다. 마찬가지로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에게 예배하는 축제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하는 것은 곧 우상 숭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자유의 내용은 힘차고 깊습니다. 성도는 마땅히 그의 생활 속에서 이토록 귀한 그리스도의 자유를 온 누리에 실천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행여나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이 소중한 자유를 우리의 그릇됨으로 인해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이 깊고 오묘한 자유 안에서만이 성도는 바르고 참된 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영적으로 어둡고 위험한 이 세대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이 세대 가운데 거룩한 주님의 뜻을 의지하며 살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나는 무엇이 내게 옳은가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며 날마다 행동하길 원합니다. 나의 권리보다는 남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자가 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