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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9:1~29)②[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꽈벼기 2020. 4. 23. 07:37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에스겔 39:1~29)

 

1~8, 마곡을 지탱하고 있었고 힘의 상징이었던 무기를 없앰으로써 결정적인 패배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 단락에서 심판의 외적인 범위와 강도를 묘사하고 있다면, 본 단락에서는 심판의 내재적인 성격을 묘사합니다.

 

1~5절은 심판의 상황입니다. 마곡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멸망합니다. 1절에 마곡 연합군을 하나님의 대적합니다. 2절에는 북방에 있는 마곡 연합군을 이스라엘의 산 위에 세웁니다. 3절에서 그들을 무장 해제시킵니다. 4절에서 마곡 연합군들이 산 위에 엎드러져서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합니다.

 

6~8절은 심판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곡의 연합군을 멸망시키시는 목적은 이중적 성격을 지닙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유일한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통하여 이방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심판은 부정적인 의미로 주어진다기보다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선포된다고 불 수 있습니다. 이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9~20, 그들이 심판을 받은 이후에 수치스러운 상황에 부닥치게 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저자가 마곡의 심판의 결과보다 이스라엘의 이후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의 지배적인 주제는 곡이 이스라엘에 의하여 수치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6~18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피를 흘리는 것과 정결함이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을 받아 더럽혀진 땅은 오직 피 흘리게 한 자의 피를 통해 정결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7~19절에는 마곡 연합군들의 패배 이후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새와 들의 짐승들이 그들의 시체를 통해서 잔치 한다고 상징적으로 언급합니다. 이러한 수법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참혹성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9~16절은 마곡 연합군에 대한 심판은 매우 철저하게 시행합니다. 마곡 연합군들에게 행해지는 심판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빼앗길 뿐만 아니라 생명을 완전히 빼앗기고,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먹힙니다. 저자는 심판의 상황을 심각하게 기술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묵과할 수 없으며 반드시 보응 하십니다.

 

17~20, 마곡 연합군에 대한 심판은 기존의 질서를 뒤엎을 정도로 시행됩니다. 곡에 대한 심판은 들짐승을 위한 잔치로 변모합니다. 하나님은 동물과 사람의 역할, 기존의 질서를 바꾸어 심판을 하십니다. 보통은 사람들이 희생 제물이나 동물들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곡의 연합군들이 희생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존 질서를 역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봅니다.

 

21~29, 이스라엘의 미래 일들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외견상 매우 비논리적인 연결 같으나, 이방의 멸망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습니다.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은 이방 백성들과 이스라엘의 미래가 서로서로 연관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3, 24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을 의인화하여 감정적으로 언급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분노를 표명해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 백성들의 포로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25~24절은 이스라엘의 과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하여 밝히기 이전에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잘못을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범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25~29절은 이스라엘의 미래입니다. 이스라엘 미래의 회복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히 베풀어집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하나님에게 변한 죄를 회개함(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통하여 만방에 하나님을 계시함(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을 성취함) 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새 신을 부어 부드러움을 갖게 하심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29절에 다시는 자신의 얼굴을 이스라엘에 가리지 않으시고 은혜와 사랑을 계속적으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성령으로 인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구원에서 멀어지지 않게 됩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뜨거운 구속 열정이 있었기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바른길로 이끌고 불신자를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기 위해 열심을 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 우리들의 심령이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순전히 타올라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믿는 자의 거룩한 분임을 알길 원하며, 버리지 못한 더러움과 범죄가 있다면 제해 버리길 원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강한 손으로 붙드시는 나의 소망을 둡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기념합니다. 하나님의 친절한 팔에 안겨서 영원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기도합니다.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라]

(에스겔 39:1~16)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히 거주하고 있는데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이 쳐들어와 어렵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을 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욕심으로 힘없는 이스라엘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병력을 동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멸망을 에스겔을 통하여 예언하게 합니다.

 

곡의 무리, 그에게 속한 모든 나라의 땅과 백성을 이스라엘 산 위에서 초토와 시켜 진멸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 하도록 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여 악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엄청난 전쟁에서 보호하여 구원한 일을 몸소 체험하게 하여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그 능력을 온 민족들에게 알게 합니다.

 

심판의 그 날이 어떠합니까? 예언이 맞아떨어져 악한 세력이 무너지고 그들이 행한 대로 철저히 보응 하는 것을 봅니다. 대적들이 패배하여 남겨 놓은 무기들이 일곱 해 동안 태울 땔감으로 변하였고 모든 것이 역전이 되었습니다.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완전히 전멸당한 곡의 군대는 또 하나의 귀찮은 대상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동원하여 죽은 사람을 치우고 매장하는 일만 일곱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정해준 바다 동쪽에 골짜기에 있는 곳인데 하몬곡의 골짜기라 부릅니다.

 

흩어져 있는 시체의 뼈까지 챙겨 마지막 성결 작업까지 합니다. 오염된 모든 부분을 깨끗게 하여 하나님께 합한 거룩한 땅으로 만들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완전 회복의 땅을 봅니다.

 

조용한 나라를 침략하여 지배하며 설치던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한 두 나라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잘 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일본처럼 아직 악독하게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언젠가 쓰나미 사건 이상으로 심판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나 공동체의 행정에는 공정한 관리가 필요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쳐 기울어진 고깃배처럼 불안한 운항은 남들이 보아도 불안합니다. 수치와 아픔으로 몰아가는 입방아들을 조심하여 무게 중심을 바로 해야 할 고깃배들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곡의 왕처럼 판단을 실수하면 영적으로 죽이는 하나의 도구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거룩함을 나타내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길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며 죄를 혐오하고 언제나 성결하게 하여 늘 주의 임재 아래 회복의 연속이 일어나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쓰임 받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