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꽈벼기 2020. 2. 7. 07:42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5:19~34)


19~26, 본문에는 언약 후손의 영예와 축복을 얻었으나 현실적으로 아들이 없었던 이삭의 딱함과 이 난관 극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결과 자식을 잉태한 기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진일보한 신앙을 가졌음이 틀림없습니다.


이 사건은 기도의 중요성과 더불어 모든 태가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으로 잉태되며, 특별히 하나님의 구속사의 주요 역할을 담당할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간섭으로 출생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야곱, 요셉이 바로 그러한 기적적 간섭으로 출생하였습니다. 이처럼 구속 역사의 주역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스스로 선택하시기에 인간에게는 자랑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한편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한 리브가는 배 안에서 서로 다투는 두 아이를 이상히 여겨 하나님께 문의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응답은 두 아이는 장차 두 민족을 이룰 것이며 다툼은 두 민족 간에 싸울 적대 관계를 암시하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구속사의 흐름에서 이스라엘이 에돔보다 우위에 설 것이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계시는 인간적으로 볼 때 장자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불합리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인간을 선택하시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계시는 훗날 사도바울의 선택교리 근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행에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선택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우리의 구원 역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27~34절 모태에서부터 다툼이 시작되었던 에서와 야곱 형제의 갈등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고하신 바로써, 그들의 판이한 기질로 인한 생활 전반의 차이, 그리고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자기 취향대로 두 아들을 각자 편애했던 이삭 부부의 실책으로 인해 계속되었고, 그 때문에 이 가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이 가정에서 발생했는데, 그것은 이 집의 장자 에서가 고대 세계에서 생명만큼 고귀한 장자의 권한을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 쉽게 팔아버린 망령된 성품과 행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바른 인생관과 신 의식이 없었기에 무엇이 최상의 가치를 지니는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릇된 가치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보다 자신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더 중히 여겼던 에덴에서의 범죄 이후 생겨났습니다.


한편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거룩한 은혜를 무가치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에서를 망령된 자라 단죄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이 제공하는 기쁨과 포만감을 위해 영생과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포기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망령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며 신령한 것을 우습게 여기는 자에게서 진주를 취하여 그것의 가치를 알며 귀히 여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간사하지만 그 진주를 열망했던 야곱에게 주권적으로 장자 권을 선사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삭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으며 에서와 야곱의 적대 관계는 그들 뿐 아니라 그 후손의 역사에까지 지속하였습니다. 이 다툼은 에돔의 후손인 헤롯왕이 야곱의 후손이자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신 예수를 죽이려 한 데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성격을 통해 그 의미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에서처럼 권리를 포기함으로 그에 따르는 축복까지도 잃어버리는 자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야곱처럼 주의 영원한 장막을 기대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일관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내 가족 중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두둔한 일은 없는지 새삼 생각해 봅니다. 골고루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잘 처신하는 복을 주시길 원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 되지 않게 하시고,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며 그릇된 욕망에서부터 보호해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