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천지의 주재시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꽈벼기 2020. 1. 20. 21:33

[천지의 주재시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창세기 14:13~24)

 

13~16절 하나님을 믿는 자는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빛나는 정신과 한 영혼도 놓쳐버릴 수 없다는 뜨거운 형제 사랑을 지닙니다.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사모하며 헤브론으로 나갔던 아브람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통해 정신과 사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조카 롯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조금도 지체함 없이 318명의 잘 훈련된 무리를 이끌고 귀환하는 정복군들을 추격했으며 기어코 롯과 재물과 포로들을 구출해내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집에서 훌륭한 단련시킨 무리라 하더라도 가나안 중, 남부를 초토화했던 메소포타미아 원정군에게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현상적인 전력의 열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승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를 의뢰함으로 그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만난 형제를 도와야 한다는 강한 사랑과 정복자들로부터 애매하게 포로가 된 자들을 구출하려는 열정에 자신을 희생한 그야말로, 죄의 포로가 된 온 인류의 영혼들을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며, 곤경에 처한 형제의 생명을 구하게 하는 무한한 능력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의 근간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통한 신앙의 성숙이어야 합니다. 실로 신앙은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17~24절 사해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가는 메소포타미아 원정군을 뒤쫓아, 탈취당한 물건과 포로를 회수한 아브람은 가나안 전역의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족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본문은 환영하는 살렘 왕 멜기세덱의 행적과 이에 아브람이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내어준 사실 및 소돔 왕의 계산적인 환영 장면이 그러져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극히 대조적인 두 인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 한 사람은 물질적 욕심에 심취되어 반역을 꾀했다가 알거지가 된 소돔 왕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가나안 땅에 평화와 자유를 회복시켜준 사실에 감사한 나머지 많은 음식물로 환영한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아브람의 승전을 가능케 하나님께 지극한 영광을 돌림으로써 자칫 인간적 승리감에 도취하여 자만할지도 모를 아브람 일행을 바로 세웠으며, 이방 세계 가운데 유일신 여호와의 권능을 드높였습니다.

 

이로써 아브람의 환영식장은 가나안의 주인이 아브람으로 새롭게 교체된 것과 여호와만이 온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공식화하는 기념식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의의 실현을 위해 이 땅에서 수고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들어 하나님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아브람과 싸운 네 명의 왕들은 모두 당대의 막강한 통치자들이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이 전쟁은 오직 그의 신앙으로만 대처해야 했던 전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영적 전쟁, 곧 믿음의 선한 싸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결국 아브람이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싸움에서 마침내 이길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의 강인한 육체도 연약하여져서 죽을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나그네 순례의 생이 종결되는 그 순간, 우리는 영원한 나라의 주인이신 주님의 영접을 받을 것입니다. 위로를 받고 안식하며 풍요로움을 누릴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우리는 지금 푯대를 향하여 경주하는 경주자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날을 생각하며, 그 안식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성실히 성도로서 부족하지 않도록 살아갑시다.

 

아브람이 롯을 구하듯 지금 내 주위에서 구원해야 할 사람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죄악 때문에 곤경에 빠진 형제에게 더 큰 사랑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인간적으로 도움 받은 사람을 더 의지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오직 주님만을 구하게 하시고 물질에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