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편 149:1~9)
1~4절, 1절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특별한 배려와 보호의 은총이 생동감 있게 그려지고 있는 본연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쉬고 있는 회중들을 향해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요, 왕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구속 받은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향하여 특별히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새 노래’란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체험을 가진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찬양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즉 낡은 형식적인 이해, 단순한 교리적 반복, 성전에서 습관적으로 부르는 노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이해,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4절에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진심으로 찬양해야 할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이 구원 역사를 떠나서는 불가능합니다. 한때 평화와 번영을 누렸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우상을 섬김으로써 왕국은 분열되고 급기야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5~9절, 6절에서 시인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고 찬송을 부르며 양면에 날을 세운 칼로 무장하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원수를 추방할 뿐만 아니라 끝까지 쫓아가서 과거의 대적들을 철저히 복종시킬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민족들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멸절시킨 사건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대적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최후의 심판 날 성도들이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세상 만국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예시합니다. 사실 우리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라고 한 다윗의 외침처럼 이 세상을 탄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도덕하고 불경건한 시대에 주의 뜻대로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수들의 압제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시에서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멸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원수와 더불어 싸워 주시고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대하 20:20)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여 일반인들과 외모가 다른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영광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기뻐하시고, 이들은 영적 환희를 누리며, 심판의 권세까지 받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광을 꼭 지켜야 합니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찬양의 요소를 갖추어 나가길 원합니다. 환경에 따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않길 원합니다. 내가 힘들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할 때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새 힘을 얻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