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꽈벼기 2019. 12. 24. 07:46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계시록 21:22~22:5)

 

22, 23절에 보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이곳에 성전이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 되어 항상 그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란 인간이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성별한 장소였지만, 이제 예루살렘 성 전체가 성전이므로 별개의 성전이 필요치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빛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징들로 미루어 볼 때 참된 의미의 교회란 건물, 예배 의식, 행정, 직임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26에는 구속 받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누리게 될 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만국이 빛 가운데로 다니게됩니다. 여기서 만국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 없이 구속 받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짓과 불의를 행한 자들은 그 앞에 설 수 없고, 오직 사랑과 진리와 공의를 실천하는 자만이 영광을 받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서 땅의 왕들이란 세상 권력자가 아니라 짐승과 바벨론에 대항하여 하나님과 어린 양되신 그리스도께 충성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광을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와 존귀를 돌리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게 될, 구속받은 성도들의 참된 예물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성문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닫히지 않는다는 것은 구속받은 성도들에게 부여될 참된 자유와 그 복된 생활상을 영원함을 보여줍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라고 했지만, 새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여기에는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부르짖음도, 애통하는 것도, 밤도, 곡하는 것도 없습니다. 즉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고, 다만 찬송과 예배, 복된 생활의 누림과 끊이지 않는 감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직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함을 받아 27절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며 또한 어린 양되신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충성하는 이기는 자들뿐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유업입니다.

 

22:1~5, 본문에서는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자연은 어두워지고 일그러지고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란 사실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그때엔 첫 창조 때에 에덴에서의 삶처럼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생명수의 강은 영원한 세계의 축복을 보여줍니다. 한편 이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흘러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새 예루살렘에서 생의 원리가 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은 새 예루살렘에 끊임없이 흘러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성도에 구원과 영생을 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생명나무가 큰 길을 따라 강 좌우에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영생을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맺는 성령의 열매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도들은 그 과실을 먹게 됩니다.

 

또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있습니다. 이는 천국에 병자가 있다는 것과 만국이 새 예루살렘 밖에 따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새 예루살렘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구속 공동체만이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이 생명나무가 지닌 소성시키는 능력은 죄 많은 이 땅에서 눌리며 생활했던 성도들의 마음과 양심과 인격에 영향을 미쳐서 풍성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3~5절은 새 예루살렘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는 저주가 없다고 합니다. 핍박하고 방해하던 악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받을 최고의 복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모든 성도의 소원이며, 이 소원은 바로 이때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성도는 그들의 이마에 그의 이름을 표로 가질 것입니다. 이 표는 그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속해 있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들의 주가 되셔서 보호하고 인도하심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셔서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은 실족할 염려가 전혀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중에 거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무위도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기쁨으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깁니다.‘성도들은 하나님을 직접 뵐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생활 전체로 예배하며 삽니다. 이곳에서 성도들은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왕 노릇 하리로다는 것은 세상의 왕들처럼 타인을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왕의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자유와 참된 권위를 갖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토록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며 감격해 하는지 돌아봅니다. 이 세상의 삶에 쫓기다 보면 우리는 마땅히 돌려야 할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원망의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서 나오는 생명수를 끊임없이 공급받을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성령 충만함으로 나 자신을 성결케 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내게 허락하사 나의 허영과 탐심 욕망이 성령 충만으로 버려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