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꽈벼기 2019. 11. 30. 07:35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요한계시록 6:1~17)

 

1~8, 일곱 인을 떼는 일은 실제적인 책의 개봉과 종말의 사건들에 대한 예비적 사건입니다. 즉 일곱 인은 환난의 일부라기보다는 환난에 대한 준비 과정입니다.

 

1절에는 을 떼시며 역사의 종말과 심판을 펼치시는 분이 바로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또한 네 생물을 통해 네 말과 그 말 탄 자를 보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네 말과 그 말 탄 자들은 지상에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대행하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고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역사의 주요, 심판의 주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재림의 때를 기다리십니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첫째 인을 떼십니다. 그는 이제 교회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고, 구속의 역사를 왕성하시기 위해 위대한 마지막 일을 시작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말과 그 탄 자들이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것들로서 마지막 때가 임하기 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이 땅위에 일어날 것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어린 양이 첫째 인을 엽니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뇌성 같은 소리고 오라고 외치니 흰 말이 나타나는데 그 탄자는 손에 활을 들었습니다. 그는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 계속 승천합니다. 그가 쓴 면류관은 왕이 쓰는 면류관이 아니라 경기자가 쓰는 면류관입니다. 이 흰 말을 탄자는 유혈, 기근, 죽음을 상징하는 나머지 세 말 탄자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진로에 의해 이 땅위에 비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질 것을 예고합니다.

 

둘째 기수는 붉은 말을 탔습니다. 이는 피 흘릴 징조입니다. 내란과 혁명을 상징합니다. 싸우며 죽이러 왔기에 을 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악에 내포된 파괴적 세력을 풀어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악의 세력이 횡행하며 서로 서로 멸망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가 되면 인간적인 신뢰 관계는 완전히 파괴되고 극단적인 이기심과 경쟁심 때문에 이 땅 위에 화평이 없어지게 됩니다.

 

어린 양이 셋째 인을 떼시니 검은 말을 탄자가 나옵니다. ‘검은색은 보통 전쟁과 유혈의 결과인 슬픔, 애곡, 황폐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세 번째 환상은 가난과 굶주림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게와 분량, 삯과 가격 등을 언급하면서 이 환상은 극심한 인플레의 경제적 상황과 경제적 불평등을 소개합니다.

 

어린 양이 네 번째 인을 떼시니 청황색 말을 탄 자가 나왔습니다. ‘청황색이란 색깔은 그 말 탄 자의 이름 즉 사망과 잘 어울립니다. 전쟁과 기근 뒤에 오는 온역을 상징합니다. 이 청황색 말을 탄 자는 전쟁, 흉년, 염병, 짐승으로 사람들을 멸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멸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정과 주권적 처리의 일부입니다. 또한 땅 4분의 1이 재난을 당한다는 것은 아직도 4분의 3은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요한은 천국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9절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아마도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자,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를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라고 설명합니다. 저희가 예수로부터 받은 증거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입니다.

 

한편, 이 순교자들을 죽인 이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오면 올수록 점점 더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며 그 결과 많은 성도가 순교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하늘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일반적 생각입니다. 이 제단은 번제단으로 이해 할 수도 있고, 순교자들이 큰 소리로 호소함을 보아서 향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대환난기에 영혼들의 구원받기도 하지만 순교 당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있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제물 중에 가장 귀하게 생각한 것은 피였습니다. 생명인 피는 제단 아래에 드려졌습니다. 선한 사람이 선한 일을 위해 죽을 때 그 죽음은 비극적이요 재난 같고, 귀한 생명의 불필요한 허비 같으며 악인의 승리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자신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고귀한 제물로 드리는 행위요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보장받는 일입니다.

 

순교자들은 큰소리로 외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우리 피를 신원해 주시기를바랍니다. 이런 순교자들의 호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대답으로서 흰 두루마리를 각각 저희에게 주시면서 대환난이 아직 끝이 안 났고 다른 사람들도 더 순교 당한 뒤에 사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의로운 사람을 구원하실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11절에 하십니다.

 

한편, 순교자들에게 주신 두루마기는 희색이었습니다. 여기서 희색은 의, 순결, 영화 등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리를 주셨다는 사실은 순교자들이 이 땅에서 의롭고 순결하게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간직함으로써 승리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상징하며, 나아가 이제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수가 차기까지기다리라는 대답을 주십니다. 세상의 끝이 오기까지 역사의 극은 계속되리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신념입니다. 모든 역사는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서 궁극적 목적을 달성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심판을 유보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2~17, 본문에는 지진,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진 해, 피 같은 달, 떨어지는 별들, 떠나가는 하늘, 자리를 옮기는 산과 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대의 종말에 있을 우주적 대이변에 대한 이러한 표현의 배경에는 심오한 신학이 존재합니다. 이 장면에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존하는 피조물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붕괴 혹은 대격변은 17절에 나오는 그들의 진노의 큰 날과 연결되어 우리에게 마지막 날을 암시합니다. 이날은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진노의 날이 될 것이지만, 의로운 자들에게는 구속의 날이 될 것입니다.

 

어린 양의 진노란 말은 우리에게 낯섭니다. 어린 양은 보통 희생과 온유와 친절,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은 심판주로서 불신과 죄악의 세상에 대해 진노를 쏟으실 것인데 이 진노는 너무 혹심하여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아무리 임금, 왕족과 장군처럼 안전하고, 부유하며, 강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자유하고,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린양과 과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본서에 기록된 예언들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지 모르지만, 일본의 압제와 6, 25사변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사건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전체 가운데서 외적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시기가 종종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시기가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주님이 내 삶에서 이루어 주신 일들을 증거하길 원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그때를 소망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