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꽈벼기 2019. 4. 20. 08:25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태복음 27:57~66)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여인들은 슬퍼하며 안타까워했으며 아리마대 요셉은 정성스럽게 주님의 시체를 장사지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의 존귀한 공회원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도 숨기고 있다가 그 분의 죽음 앞에서 용기를 얻어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주의 뜻을 따르려면 세상 것들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던 유대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부활을 예상했습니다.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주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부활에 대해 불신했으며 원천 봉쇄를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역사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파수꾼을 세워 저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무지와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완악한 무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주의 뜻은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습니다.

 

파수꾼이란 경계하여 지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재산을 보호하고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이며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비상조치를 취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파수꾼을 세우는 목적입니다. 그들에게 부활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고 위로가 아니라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를 지키는 파수꾼들은 불의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인봉된 무덤이었지만 그 모든 노력은 얼마 후 수포되고 말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동녘에 밝은 기운이 이는 동시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무대에서 제거해 버리려는 그 모든 노력은 부활의 약속에 항거할 수 없는 승리로 말미암아 하늘의 비웃음을 사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는 악한 흉계에 이용되는 파수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알리는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부활을 부인하려는 자들을 미워하거나 업신여기기보다는 그들의 불신앙을 위해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웃의 불신앙을 보고 애통해하는 자가 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