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13)②
1~13절은 열 처녀 비유입니다. 열 처녀는 성도들의 공동체 곧 보이는 지상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모두 등을 들고 있었으나 그중에는 기름을 채우지 않은 등을 가진 자도 있었습니다.
흔히 이처럼 등은 가졌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을 가리켜 미련한 자, 중생치 못한 자, 신앙과 생활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자 등으로 이해합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러한 자들 역시 주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한 성원을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로 오늘날 교회에는 등록하고 주일마다 꼬박꼬박 출석은 하지만 구체적 생활 가운데 그리스도의 증인다운 신앙의 자태를 드러내지 못하는 기름을 준비치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한때 은혜 받았던 경험으로 자만하여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간구하고 누리고 전하는 일을 도외시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입과 머리로써만 믿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시적 교회는 불완전하여 알곡과 가라지가 뒤섞여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완전한 교회 현실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한 자들은 흔히 절대 부흥의 공동체로 알고 있었던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약삭빠르고 난폭하게 행동할 때 큰 절망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이 같은 불완전한 모습의 교회는 한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진정 주님 오시는 그날에는 가라지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교회는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름을 서로 나누게 되면 열 처녀 모두가 결혼예식이 파할 때까지 쓰기에 모두 부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구원이 각 인격의 믿음과 신앙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결단코 타인의 믿음이나 간구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로 이것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문제이며, 더 나아가 최후 심판의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단을 내릴 책임은 자기에게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로써만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신랑은 열 처녀가 졸음에 겨워 잠잘 때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모두 잠에 빠졌던 사실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처녀들이 예상하던 초저녁보다 훨씬 늦은 시간인 한밤중에 신랑의 일행이 들이닥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재림의 불시성과 그러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도 지금과 똑같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는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다반사를 위해 미리 저리로 뛰어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분별 있는 설교자는 회개를 외칠 것이며 듣는 무리는 결단을 여전히 뒤로 미룰 것입니다.
◆성도는 너무 늦었다는 절망의 탄식이 나오기 전에, 일할 수 없는 밤이 도래하기 이전에 주님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마치 신부가 사랑하는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며 문소리에 귀 기울이듯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열정으로 주의 오심을 기다린다면 주께서 언제 오신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주저나 당황 없이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재림의 준비는 나의 평생을 통해서 계속될 수도 있음을 기억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로서 현재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항상 깨어 있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