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태복음 9:27~34)
27~34절은 본서에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메시아적 권능을 더욱 확실히 드러내기 위하여 이적 치유 기사들을 한 군데 모아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이 일차적으로 부각하고자 하는 내용은 물론 예수의 메시아적 권능입니다. 하지만 두 소경의 신앙 또한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 불린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는 바로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칭호입니다. 물론 소경들의 메시아관이 당시 일반 대중들에 의해 대망하던 메시아관에서 그다지 비켜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믿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두 소경의 영적 통찰력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실로 메시아 시대의 특징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때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두 소경은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눈을 고쳐주실 것을 갈망하였습니다. 당시 율법에 정통하고 하나님께 대해 열심히 있노라고 자부했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를 신성 모독자 내지는 죄인의 동료 정도로 여기고 비난하였음에 반해, 이 소경들을 비록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영혼의 눈은 오히려 누구보다 밝았습니다.
벙어리를 고치십니다. 본문의 내용상 12:22~24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기사를 굳이 같은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4:24에서 이미 귀신들을 쫓아내는 이적들이 많이 행해진 것으로 묘사되었거니와, 본문의 이적 또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됨이 무난합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치유의 결과에 따른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주의를 끕니다. 무리의 반응을 보면 26, 31절에서 보였던 무리의 놀라움은 이제 33절에서 더욱 고조됩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적을 전대미문의 독특한 것으로 파악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들 중에는 이미 27절의 소경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랐던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백성 중에 예수의 명망이 드높아감과 때를 같이하여 대적 자들의 비난과 궤계 또한 기세를 더해갔습니다. 특히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는 비난은 10:16~23에 등장하는 예수의 강화 내용의 배경이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기 직전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하였던 사단의 세력들은 이처럼 곳곳에 때마다 나타나 예수의 메시아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복음 사역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 또한 저 음흉한 사단의 세력들과의 치열한 전쟁을 늘 염두에 두고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35~38절, 4:23~25절은 첫 번째 강화를 위한 준비의 역할을 하였듯이 본문 역시 두 번째 강화로 이끄는 준비 내지는 도입부의 역할을 합니다. 또한 본문은 제2차 갈릴리 사역을 마감하는 요약인 동시에 제3차 갈릴리 사역을 여는 중간 결산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 이후의 사건과 메시지 전체가 제3차 갈릴리 사역 중에 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어쨌든 35절은 이제까지의 예수의 사역을 복음 선포, 선포된 복음의 상세한 가르침, 및 치유 등으로 요약합니다. 그리고 37, 38절의 말씀은 예수 사역의 확장과 더불어 일꾼들이 요청된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는 10장에 수록된 강화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 소경들이 무리의 책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던 이유는, 물론 그들의 말대로 눈을 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 속에서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 메시아에게 그들의 문제를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신앙이 결국 그들의 평생의 문제를 해결하게 한 것입니다.
●이 소경이 가졌던 분명한 확신과 간절함이 나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내 기도에도 주님께 향한 확신과 간절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