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 2:1~12)
마태는 메시아로서의 예수에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아기 예수에 대하여 세상이 극적으로 상반된 반응을 보였고 세상에 흔히 있을 수 있듯이 선한 새 왕으로 오신 예수는 기존의 악한 왕에게 고난을 받아 애굽으로 피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즉 왕으로서의 아기 예수의 행적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예수 탄생은 중대한 사건입니다. 아예 비신자나 현대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성도들마저도 예수 탄생을 너무 기정사실화한 나머지 그 사건의 심각성을 자칫 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탄생은 먼 이국의 천문학자들이 초자연적 별을 따라 찾아오고 한 나라의 왕이 한 마을의 갓난아이들을 거의 학살시킬 정도로 심각한 극적 사건입니다.
예수에게는 경배와 저주, 영광과 핍박이 언제나 공존했습니다. 즉 세상에 오신 제2위 하나님에 대하여 일부는 신성한 영광을 돌리고 흑자는 심한 경멸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극도의 환영과 거부는 예수님 생애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이 사실만 보면 마치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택할 수도 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먼 훗날 진정으로 우리를 영원히 택하고 버리실 그분은 잠시 그리고 먼저 우리들에게 선택권을 주십니다.
예수에게는 경배와 저주, 영광과 핍박이 언제나 공존하였습니다. 즉 세상에 오신 육신의 하나님에 대하여 일부는 신성한 영광을 돌리고 혹자는 심한 경멸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극도의 환영과 거부는 예수님 생애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이 사실만 보면 마치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택할 수도 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먼 훗날 진정으로 우리를 영원히 택하고 버리실 그분은 잠시 그리고 먼저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과 헤롯은 그 결과적 반응은 서로 달랐지만, 아기 예수를 왕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는 동등했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 탄생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신적 기원의 섭리에 의하여 이미 계획된 의도적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동방 박사들에게는 성경 지식은 없었지만 메시아에 대한 신앙은 있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먼 길을 떠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실수가 있었습니다. 별만 따라왔으면 좋을 것을 왕이라면 예루살렘에서 태어 날것이라는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그만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게 비극의 씨가 됩니다.
그 이야기가 헤롯의 귀에까지 들어가 헤룻 왕은 메시아의 탄생을 자기 신분의 위협으로 느껴서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그 다양한 지식에도 자신들의 무관심으로 약속된 메시아를 영접하지 못합니다.
★★먼 길을 찾아와 주님께 경배한 박사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관심 속에 있지 않고 주의 영이 임하여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늘 간절함으로 주님을 찾아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육신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동방박사처럼 신앙을 같게 하시되 내 생각대로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기를 원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 따라 행하길 원하며,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뜻 모를 실수를 하지 않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