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꽈벼기 2018. 7. 31. 08:03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열왕기하 7:3~20)

 

3~11, 사마리아 성의 경제 회복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본문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아람 진영으로 들어갔던 네 명의 나병환자에 의해 사마리아 성에 아름다운 소식이 전하여지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성의 형편상 인간적으로 판단해서는 그의 회복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적의 소리와 문둥병자들을 통한 엘리사의 예언의 성취는 사마리아 성읍에 사는 거민들의 작은 힘조차 빌리지 않은 온전한 신적 능력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본문은 나병환자를 통한 인간 실존의 모습과 총 퇴각한 아람 군대의 모습, 그리고 아람의 진영에서 취한 나병환자들의 모습과 더불어 신앙적 양심을 갖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어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심리적 묘사와 더불어 물질에 대한 탐욕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임을 나타냅니다.

 

복음의 소식은 뜻을 가지고 실천하는 자에게 먼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병환자들은 필사의 각오로 죽음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 때문에 삶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먼저 접하게 된 것입니다. 성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 문둥병자들이 행함으로써 구원의 소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의지하던 것을 사용하여 인간 스스로 그것에 속아 넘어가게 하십니다. 전장에서 적군의 동태에 모든 주의력을 쏟고 있던 그들의 귀에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심으로 스스로 믿고 있던 청각적인 능력에 속아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큰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의 소식을 전하리라는 다짐을 보였습니다. 사실 나병환자들은 성안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냉대를 당했으며 급기야는 이스라엘을 버리고 아람에게 와서 항복하려고 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심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편, 당시의 사회 제도 속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심한 멸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나병환자들을 택해서 사마리아 성을 위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로 삼은 것은 비천한 자를 택하여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나병환자의 결사의 태도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전도자가 갖춰야 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12~20,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은 엘리사의 두 가지 예언이 모두 그대로 성취되는 대목으로 나병환자들을 통하여 전달된 아름다운 소식이 왕의 의심으로 지체되어 전달되는 장면과 엘리사의 예언대로 사마리아 성의 경제가 원래 상태로 회복되고 의심했던 한 장관이 죽는 장면으로 구성합니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기까지는 많은 장애에 부딪힙니다. 물론 그 당시는 전시였기 때문에 한갓 나병환자 네 사람이 전하는 말만을 듣고 성문을 열기에는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긴 했지만, 백성들에게 전하여 질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파되지 않고 지체된 근본 원인은 왕의 의심과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바 그대로 정확한 예언의 성취를 보여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욱 자신을 신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 장관의 불신은 온 백성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원을 부정한 것이 되며 하나님을 구원자가 되지 못하게 배척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믿고 의지할 때 비로소 우리의 구원도 반석과 같이 단단한 것이 됩니다.

 

한편, 불신앙뿐만 아니라 망언으로 인해 심판을 받아 죽은 한 장관의 모습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한 자들에게 돌아오는 필연적인 결과일 뿐만 아니라 심령이 죽어 말씀을 보고도 먹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람 군이 전면 퇴각해 구원을 얻은 사마리아 성은 마치 사단의 역사가 물러간 후 부흥하는 교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주역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구원의 감격을 자기 백성에게 알린 것은 저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냉대를 받았던 네 사람의 나병환자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자기 백성에게 단단히 자기들 몫을 끼쳤습니다. 실로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하심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펴신 하나님의 증거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들이나 바울처럼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 것 같은 복음 전파의 긴급성을 느끼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문제는 목회자가 주로 해야 할 일이고 성도들은 직장에 나가 삶터에서 할 수 있을지 현실은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사명 같아 씁쓸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겨봅니다. 전도의 사명을 새롭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