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예레미야 1:12~22)
현재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선지자는 비참한 결과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상황을 ‘멍에’로 표현함으로써 지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과거의 모든 영광을 상실하고 열방에 의해 정복당하는 가련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의인화시켜서 슬픔을 묘사하는 선지자는 감정의 폭을 더욱더 극대화하기 위해 ‘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슬픔은 이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할 때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인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은 단지 인간적인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데서 오는 신앙적인 슬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모습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이 외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합니다. 이러한 호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죄를 근본적으로 용서해주시고 언약을 완전히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호소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간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치나 능력과 상관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파괴된 사실에 대해 심각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뢰해야 합니다. 징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한 회복을 가능케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예루살렘 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단순히 과거의 한 시점에 발생했던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 누구에게도 환난과 파멸이 임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역사의 산 교훈인 셈입니다.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시는 하나님, 죄악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이들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담대한 소망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환난 자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환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서 이탈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나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삶은 자비와 의를 추구하길 원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서 자백하고 회개해야 할 죄가 있습니다. 깨우치시는 말씀으로 내 안에 주님의 형상이 빚어지게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