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꽈벼기 2018. 3. 11. 09:04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사도행전 28:1~15)

 

1~10, 본문에는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이 바울의 일행을 따뜻하게 대접하여 불을 피워 준 사실과 바울이 한 묶음의 나무를 불 속에 집어넣자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원주민들은 인과응보의 사상을 적용하여 바울이 죄를 범한 자로서 저주를 받아 곧 죽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바울이 이 치명적인 재난에도 불구하고 아무 해도 당하지 않자 그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바울이 말씀으로 앉은뱅이를 고치자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오인하여 제사까지 드리려 했다는 기사를 상기시킵니다.

 

본문에는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도 바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바울에게는 어디에 가든지 표적이 따랐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이니 저희가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잡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앞장에서도 지적하였듯이 본서에는 바울이 이적을 행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바울뿐 아니라 사도 베드로 역시 치유 이적을 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와 바울이 예수의 제자로서 주께서 함께 역사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본문에서는 바울이 멜리데 섬에 3개월간 머물러 있으면서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그 가운데 병든 보블리오의 부친과 섬 주민들을 고쳐준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블리오는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거니와, 열병과 이질에 걸린 그의 부친에게 바울이 안수함으로써 병을 고침과 더불어 병든 주민을 고친 것은 비록 죄수의 몸이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의 사역을 통하여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께서 질병을 앓는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한 것은 먼저 인간애에 그 동기를 두고 있으니, 가련한 처지에 놓인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선을 행하셨고 사도 바울 역시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치유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치유 이적은 단순히 인간애라는 인도적 차원에서 비롯되는 선행의 의미 이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거라는 구속의 의미를 지닙니다.

 

바울은 단순히 그들의 육체적 질병만을 고쳐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그들에게 영혼의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조난자들을 환대했던 멜리데 섬 주민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좋은 전도지였으며 바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11~15, 멜리데 섬에서 석 달간 겨울을 보낸 바울의 일행은 항해 시기인 2월 초순 혹은 중순쯤에 난파당한 배와 같은 종류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출항하였습니다. 그들이 재승선한 배는 사공의 수호신인 디오스구로, 즉 스파르타의 황제 레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풀록스를 기호로 한 또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였습니다.

 

멜리데 섬을 떠난 디오스구로는 북동쪽으로 항해하다가 시실리의 수도이자 유명한 역사적 도시인 수라구사라는 항구에 정박하여 사흘을 보내며 순풍을 기다리다가 이탈리아의 변방에 있는 중요한 항구인 레기온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남풍을 따라 이틀 만에 이탈리아 해안을 올라가 보디올까지 항해하여 거기에서 이레간 머문 후 로마에 입성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보디움에서의 이레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순례의 여정을 준비하는 휴식의 날들이었으며 로마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와 날들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특별히 바울이 믿음의 형제들을 만난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기본적인 본성들은 인간을 사랑하고 죄를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덕목이 있어야 합니다.

 

예상 밖의 일이 생겼을 때 당황합니다. 하지만 그 일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로하셨듯이 나 또한 형제, 자매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게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