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꽈벼기 2018. 3. 7. 07:02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사도행전 26:19~32)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하여 자신의 사도 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도직이 사람을 통해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임을 지적하고 있거니와 본문에서도 바울은 그의 회심 사건을 서술하면서 그의 소명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현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여기에 근거하여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음을 부각했습니다.

 

신앙적 결단을 요구하는 바울의 진지한 변증법적 설교에 당황한 베스도는 바울을 미친 자로 단정하고 바울의 설교를 중단시켰습니다. 베스도는 유대교에 대한 지식이 없는 로마인이었으므로 바울이 증거하는 예수의 부활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 합리주의자였던 그가 바울을 광인으로 취급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으며 그 외에도 당대의 학문을 두루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베스도는 바울이 지나치게 학문에 열중함으로 인하여 정신 이상을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로부터 귀신들려 미친 자라는 비난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베스도의 비난과 조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고수하며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비록 미친 자로 평가될지라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핍박과 조롱을 감당한 바울의 신앙은 인내할 줄 모르는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귀한 모범이 됩니다.

 

베스도의 영적 무지에 한계를 느낀 바울은 곧이어 유대 왕 아그립바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바울은 모든 유대인이 율법과 선지자를 믿는다면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한 것들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동족인 왕에게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정중하고 권위 있게 요청을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논리 정연한 호소에 아그립바는 몹시 당황하였으나 바울의 변론 핵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바울의 말을 일소에 붙여 버림으로써 진리를 외면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끝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베스도와 아그립바 그리고 심문 소에 모인 많은 사람은 육적으로는 고관대작이며 자유인이었으나 영적 암매 상태에 있는 죄의 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이번 변증은 그의 조국 팔레스틴 땅에서는 최후의 것이었습니다. 비록 아그립바 왕을 상대로 한 설교였으나 실상은 전 유대인을 향한 고별 설교였습니다. 이토록 끈질긴 복음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베스도는 그를 광인으로, 유대인 아그립바 왕은 그를 우매자로 취급하였던바, 이는 바울로 하여금 조국을 떠나 로마로 가게 했습니다.

 

결국, 본문에서는 유대인 아그립바를 비롯하여 바울을 심문하던 자들이 바울을 무죄한 자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무죄하다는 결론은 이미 클라우디오 루시아 총독과 베스도 총독도 내린 바 있거니와, 그를 송사했던 유대인들도 그들의 고소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 권력, 명예, 학문 이 자체는 부정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은 자신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도는 그것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여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에 대해 겸손하게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바울과 같은 삶의 전환이 필요한지 생각해 봅니다. 턱없이 부족하여 생각조차 못 하겠습니다. 내가 전한 말씀을 믿어 교회에 나오도록 하는 제일 나은 방법은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복음의 열정 없이는 안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생명을 주는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