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디모데전서 6:11~21)
11~16절, 바울이 대모데를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른 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합당한가를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또한, 그분이 명하신 선교의 사명을 부여받은 모든 이들에게 붙여집니다. 이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 속에서 구별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갈 때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피하라’고 명령합니다. 돈과 교만을 피하라고 한 바울은 변론을 피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는 것처럼 달아남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을 물러나게 하라’는 경고입니다.
따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삶 속에서 의(인격적인 고결함)와 경건(실제적인 신앙심), 믿음(하나님에 대한 신뢰성)과 사랑(주려고 애쓰고 얻으려 하지 않음), 인내(어려운 처지에서 자신을 격려함)와 온유((힘을 통제하여 둠) 등이 자라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성장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싸워야’ 합니다. 선한 싸움이며 영적 싸움입니다. ‘취해야’ 합니다. 취해야 할 것은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싸워서 얻고 그 얻은 영생을 누리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모든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열심과 순수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15~16절은 신앙 고백 문처럼 나타납니다.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등의 하나님 속성을 표현합니다. 당시 왕과 황제들은 좋아하지 않았던 속성입니다. 16절에서도 계속되는데 ‘죽지 아니함’,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보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이’라고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대부분의 송영은 영광을 돌림으로써 맺어지는 데 반해 본 찬양은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17~19절, 바울이 부한 자들에게 주는 소극적인 권면에는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빈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재물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에겐 재물보다 더욱 소중하고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돈에 소망을 거는 자는 거기에 탐닉하여 참 소망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관대해져야 하며, 자신의 재물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일 뿐 아니라, 이런 선행을 통해 부자는 참 생명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특권적 신분을 각성하고, 거룩한 사명을 일깨워 주며, 많은 사람 앞에서 선한 증거를 설파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소유도 헛됩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천국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그곳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끄럽습니다. 소유한 재물이 있다면 편안을 누릴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임재를 순간순간 체험하며 돈을 의지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