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아들의 나비
꽈벼기
2017. 3. 20. 07:22
아들의 나비
나는 여태 구두끈을 제대로 묶을 줄 모른다
나비처럼 고리가 있고
잡아당기면 스르르 풀어지는 매듭처럼
순수한 세상이 어디 있을까
내 매듭은
잡아당겨도 풀리지 않는다
끊어질지언정
풀리지 않는 옹이들이
걸음을 지탱해왔던 것이다
오늘은 현관을 나서는데
구두끈이 풀렸다며
아들이 무릎을 꿇고 묶어주었다
제 엄마에게 배운 아들의 매듭은
예쁘고 편했다
일찍 들어오세요
버스 정류장까지 나비가 따라왔다
- 전윤호(1964~ )
![[경향시선]아들의 나비](http://img.khan.co.kr/news/2017/03/12/l_2017031301001568900137051.jpg)
시인은 늘 구두를 신고 다니면서도, 왜 넥타이를 매거나 선물을 포장하듯 예쁘게 구두끈을 묶을 줄 모를까. 무엇에든 구속되고 고정되는 것을 싫어하는 심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구두끈을 맨다는 것은 일하러 출근한다는 것, 맨발이 제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제도와 예절과 규칙에 묶어놓는다는 것, 그리하여 제 안에 “풀리지 않는 옹이”를 박는다는 것. 그러니 무슨 흥이 나서 구속을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겠는가.
그러나 시인은 아빠를 위해 무릎 꿇은 아들을 통해 그 매듭이 나비가 되는 놀라운 광경을 본다. 끈에 묶여 있는데도 발에 나비 날개가 달려 날아갈 것 같다니! 구속을 날갯짓으로 만든 아들의 손길이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출근하는 게 싫지가 않다. 묶여 있어도 편하고 즐겁고 자유로운 것, 그것이 사랑인가. 구두가 날개를 달았으니 오늘 저녁엔 뭔가 사 들고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겠다.
김기택 시인, 경희사이버대 교수
관련